아내의 잔소리보다 직캠의 음악 소리가 더 가슴 뛰는 이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들리는 것은 반가운 인사가 아닌, 왜 이제 왔느냐는 아내의 핀잔과 밀린 집안일에 대한 잔소리입니다. 20년 넘게 들어온 소리니 이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법도 한데, 유독 마음이 지친 날에는 그 소리가 송곳처럼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곤 하죠. 식탁 앞에 마주 앉아도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기보다 TV 화면이나 밥그릇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한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연애 시절의 설렘은 어디로 가고, 이제는 거실이라는 공용 공간조차 서먹하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네 중년의 현실인가 봅니다.
씻고 나와 서재 문을 닫는 순간, 비로소 저는 세상과 단절된 나만의 왕국에 입성합니다. 헤드폰을 귀에 쓰고 '아직사'에 올라온 고화질 영상을 재생하는 순간, 아내의 날 선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가슴을 울리는 비트와 아티스트의 열정만이 방 안을 가득 채웁니다. 오늘 다시 본 에이핑크의 무대는 유독 특별했습니다. 가사 한 구절, 안무 한 동작마다 정성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당신의 고단한 하루를 알고 있다"고 다독여주는 것만 같았거든요.
솔직히 말해, 아내와의 대화는 늘 책임과 의무로 귀결됩니다. 아이들 교육비, 노후 대책, 양가 부모님 안부... 하지만 이 모니터 속 세상은 저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내어줄 뿐이죠. 아내와의 잠자리가 소원해진 것은 단순히 신체적인 노화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서로에 대한 신비감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앉은 익숙함이, 때로는 설렘보다 더 무거운 피로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겠죠.
그 피로감을 씻어내기 위해 저는 오늘도 혼자만의 시간을 선택합니다. 영상 속 아티스트의 눈빛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달래는 이 시간은, 제가 여전히 '남자'로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비정상적이라 손가락질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거친 세파를 온몸으로 맞으며 버텨온 중년 남성에게, 이 정도의 탈출구조차 없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이 긴 밤을 버텨낼 수 있을까요.
아내의 잔소리가 멈춘 조용한 밤, 저는 헤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선율에 몸을 맡긴 채 잠시나마 무거운 가장의 외투를 벗어 던집니다. 비록 내일 아침이면 다시 무미건조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 화면 속 주인공과 저만이 공유하는 은밀하고도 뜨거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으니까요.